어린이과학동아&수학동아 자유 게시판
짧은 소설
*소재 주의
거리의 이물질을 밟으며 지나가는 자동차의 소음,
어둠 속 희미하게 빛나는 가로등,
인간의 감각을 너무나도 선명하고 몸을 긴장 상태로 만드는 차가운 겨울의 공기.
정상적인 세계를 지나며 나는 오늘도 과거에 머무루고 싶어 하는 몸뚱이를 이끌었다.
자꾸만 움츠려지는 두 발목에 살짝 힘을 주며 사람들 사이를 지나간다.
타인의 손처럼 차갑고 딱딱해진 손가락 끝을 안쪽으로 구부리며 정상을 지나친다.
밝게 빛나는, 가장 따뜻한 인위적인 빛의 거리를 지나며
나는 타인의 세계를 지나친다.
이미 익숙한 세계였기에 연민이나 동정, 선망 따위는 기억 저편에 깊이 묻고 다만 사진만 찍고 지나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신호등을 기다리며 잠시 내 자아를 만난다.
나는 타인의 세계가 아닌 나의 세계 속에서 살아본 적이 있었는가,
하늘의 무거운 공기처럼 날 누르던 자음과 모음의 결합을 하나하나 떠올려본다.
단순한 기호가 음성이 되어 들려오고,
그 음성은 내 뇌리에 단단히 박혀 환청으로 들려온다.
내 입술은 타인의 속삭임을 모방한다.
영혼이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느낀다.
유일한 나의 세계 속으로,
두 개로 갈라진 세계 속으로 침몰한다.
타인의 세계에서 벗어나 겨우 찾은 나의 세계가 서로 말을 주고 받는다.
이성과 감정이,
몸과 뇌가 서로 속삭인다.
온몸의 힘이 스르르 녹아 사라지는 이상하고도
나를 성숙한 듯 보이게 하는 그 기분이 좋아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내 육신이 타인의 세계 속에서 걸을 때 마다
내 영혼의 걸음은 기억을 되짚는다.
내 본성은 뭐였고 그 전의 자아는 누구였는지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본성을 지나쳐 유리 구슬로,
유리 구슬을 지나쳐 고립으로,
고립을 지나쳐 환상으로,
환상을 지나쳐 현재의 두 개의 자아와 마주친다.
날카롭고도 선명한 타인의 세계의 비명이
나의 세계에서 나를 끄집어
타인의 세계로 내동댕이 친다.
그 강한 힘이 나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검은 옷을 입은 이물질의 손에는 붉고도 뜨거운 선혈이 흘러내리고
이물질의 손에는 빛나는 구원이, 내 눈이 보기엔 찬란한 구원이 반짝인다.
당연하게도 푸른 옷을 입은 자동차들은 이물질을 밟으려 다가오고
그 이물질이 밟히며 생성하는 소음의 악보는
선혈이란 잉크로 작성되었다.
저 이물질의 손에는 한 자아의 선혈이 묻혀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나의 손을 보았다.
아, 각기 다른 농도와 진함의 선혈!
그것들이 나의 손에서 뚝뚝 흘러 내리고 있었다.
나는 3건의 살인과 1건의 살인 미수를 한 전과자 였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