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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나이(?) 해 주실 분

정다연 레벨 8
2024.05.28 17:04

순서대로 과거—-최근입니다.

다 민들레(이하 생략) 소설 일부입니당.

(이렇게 놓고 보니 문체? 같은 것들이 많이 변한 것 같기도 하네요.)

 

나는 잠시 생각을 하였다. 

뭔가 불안하다. 

무슨 일이 오늘 일어날 것만 같았다. 

너무 두려웠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생생하였다. 

창호지 문에 뚫린 구멍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순간 내가 민들레를 산 정상에 가서 뿌린 그 날이 떠올랐다. 

지금 부는 바람이 그 때의 바람같다. 

내가 분 민들레 씨앗이 전 지방에 퍼진 그 날, 

그 때의 기분이 들었다. 

구멍이 뽕 뚫린 창호지 문의 구멍으로 민들레 씨앗 하나가 날아왔다. 

이 민들레 씨앗은 내게 기쁨을 주던 그 색이다. 

나는 이 민들레 씨앗을 들었다. 

마루에 앉아서 빨리 짚신을 신었다. 

짚신은 내 발에 제대로 신기지도 않았지만, 

내 마음은 너무나도 급하여서 그냥 구겨신고 산에 올랐다. 

내가 몇백년간 올랐던 산이다. 

이제는 익숙하다. 

마치 내 집같다. 

나는 내 심장이 아무리 요동을 쳐도 무시하고 산에 올랐다.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아직 하늘이 깜깜하였다. 

단지 달과 별이 초롱초롱 빛이 날 뿐이였다. 

내가 본 수도는 온통 붉었다. 

길에는 아직 피지 못한 사쿠라나 심어져 있다. 

내 집과 같은 산에도 몇 년 전에 사쿠라가 넘실대었다. 

그래서 봄만 되면 사쿠라가 흩날린다. 

 

내 집에도 사쿠라의 냄새가 퍼져 나온다. 

토끼들과 매우 붉은 호랑이들은 매우 아름다운 향기라고 한다. 

하지만, 

난 봄이 싫다. 

사쿠라의 냄새를 한 번 깊게 들이마셨는데, 

매우 기분이 나빴다. 

나는 이제 완전 시들어서 죽은지 오래인 민들레를 뽑았다. 

그 자리는 내가 심었던 민들레의 자리이다. 

나는 내가 주운 민들레를 심었다. 

나는 처음으로 이 민들레가 곧바로 자라기를 바랬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민들레는 갑자기 싹이 나더니 곧 민들레의 씨앗이 잔뜩 생겼다. 

나는 고민하였다. 

이 민들레를 뿌린다면 토끼들이 나를 괴롭힐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아무개가 이것과 같은 민들레의 씨앗을 뿌렸는데, 

토끼들이 아무개를 끌고 갔다고 한다. 

나는 순간 깜깜한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 눈 앞에서는 모두 다 흰 색이였다. 

매우 이상하였다. 

분명히 내가 빨려 들어갔을 땐 깜깜하였는데, 

어찌 내가 눈을 뜨니 흰 세상일까? 

하지만 난 그런 생각을 조금만 할 수 있었다. 

내 눈 앞에서는 그 민들레 한 송이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린 새의 솜털같이 아주 느리게 떨어지고 있었다. 

내 손에서 뭔가 느껴졌다. 내 손을 보니 한 손에는 사쿠라 한 송이가, 

다른 손에는 그 꽃 한 송이가 있었다. 

나는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내 아래만 토끼들의 빨간색이 가득하였다. 

나는 고민하였다. 

이 민들레를 뿌려야 할 까? 

하지만 뿌린다면 토끼들이 나를 잡아갈 수도 있다. 

나는 나 혼자서의 싸움을 계속하였다. 

그러던 중, 한 아이의 목소리가 여리지만 강하게 들려왔다. 

 

“오빠는 용기가 있어. 그러니 오빠는 용기있게 그 폭군에게 대항했던 것이잖아. 나라면 엄두도 못 냈을거야. 지금 생각하면 오빠는 참 대단하다니깐!” 

 

바로 내 동생의 목소리였다. 

 

 

내 동생은 한 350년 전인가 죽었다. 

그 검은 폭군의 그릇된 정치로 말이다. 

나는 다시 앞을 보았다. 

민들레 한 송이가 이제 토끼들의 빨강에 닿을 것 같았다. 

나는 재빨리 손을 뻗어 그 민들레를 잡았다. 

나는 그와 동시에 바닥으로 넘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바닥에 닿지 않았다. 

계속 떨어졌다. 

나는 이대로 죽는다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질끈 감았던 눈을 다시 뜨자, 

하늘이 보였다. 

하늘은 아직도 어두웠다. 

내 손엔 민들레 한 송이가 쥐어져 있었다. 

나는 그 민들레에게 작게 속삭였다. 

나는 그 민들레에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냥 불려고 하는 그 때, 

갑자기 내 눈에 투명한 액체가 가득차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것을 내보내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그것은 내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축축하였다. 

나는 별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내었다. 

 

“민…민들…민들레야… 너…너라…너라면 할 수 있…있을 거야… 어…어서 가…가서 토끼…토끼들의 빨강으로 가득 찬 한양과 전국에 퍼… 퍼져… 나…나가…나가서… 이… 이루… 이루어…줘…” 

 

나는 내 입으로 힘껏 바람을 불었다. 

민들레는 바람과 함께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해가 뜨기 시작하였다. 

2월의 마지막 날이 지나고, 

내가 울음으로 시작하고, 

내가 이 땅에 처음으로 눈을 떴던 3월의 첫날이 시작하였다. 

 

 

 

 

 

 

ㅡㅡㅡㅡㅡㅡ

 

 

 

내가 끄덕였다. 분명한 의지가 없다면 큰 환난 속 무너질 자들이다. 예를 들어 머리에 총구를 겨눈다던가.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 어떤 인간이 이성이나 자신의 철학을 따르겠는가? 본성은 이성과 철학의 빛이 꺼진 밤에 제 모습을 드러낸다. 본성은 구석에 몰렸을 때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구석에 물린다면 본성은 이성과 철학과는 달리 상대방을 물어버린다. 아, 아니지. 그들의 환상에 대힌 염원? 아닌가, 조선인들 마음 속에, 그리고 각 국가의 마음 속에 깊히 잠들어 있는 애국심이 일어나거나, 아니면 불처럼 타오르는 중이라면 본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소중한 자들의 생명을 가지고 노름하는 것은 다르지. 50%의 확률은 아무 의미도 없이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본성에 파묻힌다. 자신이 죽는 것과,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자신의 눈 앞에서 죽는 것은 확연히 다른 문제이니. 

 경성의 공기는 차가운 달빛을 받아 서늘하고도 소름 끼치면서 인위적인 조명과 시끄럽게 호객 행위를 하는 장사꾼들의 외침, 그리고 사람들의 걸음으로 인해 서서히 달아오르는 땅의 열기와 많은 인파로 인해 온기가 있다. 월광과 인위적 빛의 조합은 그 어느 시대보다 복합적이며, 다양하고, 낯선 세상과의 만남이기도 하면서 익숙한 세상과의 이별과도 같다. 여러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다른 주제로 이야기 한다.   호객꾼은 물건을 사라고 부추기고, 한 중년 남성은 그것을 보고 고민한다. 옆의 아내가 남편을 잘 통제하는 것 같다. 아내는 웃고 있지만 그 눈초리는 칼날과도 같다. 재밌는 상황이네. 기모노, 그리고 양복, 그리고 한복의 색상과 천들이 월광과 인위적 빛 아래에서 춤을 춘다. 걷고 있는 것은 같지만, 각자 다른 주제로 각자 다른 옷과 다른 피로 이야기 한다. 내가 조선에 살아가면서 현재보다 더 복잡한 시대는 처음이다. 대한 제국과 일본 제국, 그리고 조선이 혼합된 이곳은 내게 낯선 이질감과 함께 정겨운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언제나 시대는 다른 흐름이 생겨난다. 그 흐름은 때에 따라서 완전히 막히기도 또는 그게 새로운 흐름이 되기도 한다. 그 흐름은 또 다시 다른 흐름을 맞는다. 그 흐름이 차가우면 한류성 어종이, 따뜻하면 난류성 어종이 살아남는다. 그 흐름에 따라가지 못한다면 죽는 것이지. 대한제국의 사람들로써 조선이란 이미 망한 나라의 애국심을 꺼내드는 작자들은 흐름에 완전히 벗어나 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살아있다. 그들의 생명이 꺼져도 그 느낌은 영원하다. 그 류남진이란 작자도 만난 시간은 덧없이 짧지만, 그의 느낌은 아직도 바로 방금 일어난 것 마냥 생생하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은 아닐까. 생명은 끝나도 그의 속성은 어느 누구에게 영원히 기억되어 그 사람의 기억에 영원한 낙인을 남긴다. 그 낙인이 악몽인가 길몽인가는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내게는 애국심에 불타는 자를 실질적으로 만난 처음이였다. 다른 이들은 그들이 말하기 전 체포하거나 죽였나. 그러니 류남진은 다르게 말이 나오더라고. 

 나는 시끄럽고 밝은 경성의 거리를 지나서 민가로 들어갔다. 민가는 밝은 경성과는 달리 삭막하고, 어두웠다. 이 삭막함은 전혀 소름끼치지 않았다. 조용하고 한적한 골목은 간혹 사람들 몇 명이나 지나다닐 뿐이다. 조선인들이 집성하는 것이라 그런지 일본인들과 조선인들이 공존하는 경성의 거리와는 사뭇 다르면서 동질감을 느꼈다. 동질감이라니…. 필요 없는 감정은 잊자. 잊어. 총독부에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면 자신의 소속을 드러내는 것.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곳에서 자신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면, 자신의 목을 물라고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동질감… 일제에 관한 동질감이라면 득이 되고, 조선에 관한 동질감은 날 퇴보로 이끈다. 해바라기는 빛을 바라보며 자란다. 빛에 따라서 각도가 제각각이다. 일제가 가져온 근대는 내게는 태양이였다. 그 태양은 영원하겠지. 아마도. 나는 서늘한 공기를 가로지르며 나의 집으로 돌아갔다. 2층으로 된 검은 목조 건물이다. 나무는 소나무. 상부에서 지정한 나무다. 아마 소나무는 절개와 곧은 의지를 나타내니 흔들리지 않는 조선인들의 의지를 간접적으로 꺾는 뜻이겠지. 검은색은 단정하다. 다른 얼룩이 묻어도 많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건물 하단부에는 내가 그린 그림들이 있다. 백색으로 그렸는데, 종달새, 나뭇가지, 그리고 글귀를 적어놨다. 불어로 적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만과 망각은 당신 인생 최대의 적이다’

 

작은 마당도 있었는데 그곳은 사쿠라와 대나무, 난 등을 심었다. 봄날이면 분홍빛 사쿠라 잎들이 춤을 춘다. 나는 밤공기에 의해 차갑게 식어 버린 검은 목재 문을 옆으로 밀었다. 내부는 따뜻했다. 나는 하오리를 옆에 걸어둔 뒤 내 방으로 향했다. 하루의 끝이였다. 

 

 

 

 

 

 

 

 

ㅡㅡㅡㅡ

 

 

 

 

 

 

 

개화.

겨울이 가고 꽃이 펴 세상이 다른 색으로 물드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 속 개화하지 못하는 사람들, 환경, 인생, 미래. 

숙명에 불을 붙힌 자들은 그 숙명의 거세고도 잔인한, 또는 따뜻하고도 차가운 불길 속에서 사라진다. 사라지는 사람들, 가치, 눈꽃.

그리고 그 잿더미에서 새로 피어나는 사람, 가치, 꽃. 

새로 피어난 고귀하고도 추악한 모습이여, 

푸르고도 잔인한 하늘을 보아라.

그리고 그 하늘이 푸른지, 잔인한지 알려다오.

아니면 새롭고도 익숙한 느낌인지 알려다오.

생명인지 죽음인지 알려다오.

그 불길 속에서 웃으며 죽는지, 아니면 울부짖으며 죽는질 알려다오.

 

새로운 시대를 꾸미고 잿더미가 될 모습이여,

나를 이끌어다오.

영원토록 시대의 조류에 맞게 옷을 갈아 입어야 하는 나를.

영원토록 살아가는 나를.

반쪽짜리 나를.

온전한 나를.

 

나는 문을 열고 나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잔잔하였다. 

잔잔한 침묵 속 어둡게 빛나는 별들. 

별은 불 타서 사라진다. 

그 불 속에서 웃으며 사라진다. 

공허한 눈빛은 없고 확고한 의지와 신념만이 밝게 빛난다. 

어두운 별 속 밝게 빛나는 의지와 신념은 어둠인가 빛인가.

1차적으로 내가 보는 별은 어둠이다.

그러나, 

2차적으로 그 속의 밝게 웃으며 빛나는 의지와 신념은 빛이다.

결코 어둠이 될 수 없고,

결코 빛이 될 수 없는 역설적인 별이다.

그 둘 중 하나도 될 수 없는.

하지만 모두를 이끌어 주는 별이다.

그 길의 끝은 모두 빛이다. 

환하고도 밝은 빛.

한 빛은 눈을 멀게 할 정도의 빛이고,

다른 빛은 생명을 태울 정도의 빛이다.

그리고 그 두 갈림길 모두 걷는 나.

두 다리가 버티고 있지만 발이 안 닿을 날은 반드시 찾아온다.

계유정난 때도 그러했고,

중종반정 때도 그러했으며,

인조반정 때도 그러했다.

두 길은 너무 높거나 너무 깊지만 그 두 길 사이의 땅은 적당하다.

적당한 온도,

적당한 밝기,

적당한 높이.

평생을 살고 싶을 땅이다.

나약하고도 비겁한 인간에게 신이 베푼 단 하나의 축복과 저주. 

그 운명을 즐기지 못한 이들은 스스로를 파멸, 또는 창조의 길로 이끈다.

뛰어난 현자도 기회만 있다면 언제나 유혹에 빠지는데, 파멸과 창조의 길을 걷는 이들과 그 두 길 사이의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어떠하겠는가?

자신은 위선자가 아니다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며 앞에선 빛을, 뒤에선 어둠을 드러내지 않는가.

본능적이고 추악한 삶이 우리 일생 대부분을 차지한다.

반쪽 짜리 인간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 우기나, 나머지 반쪽을 위해선 자기 자신을 죽여야 할 것이다. 다른 반쪽이 사라지면 그 공간은 이제 공허함으로 가득 차서 온전함을 이룬다. 단지 그걸 자신의 손으로 직접 깨는 일이 문제이다.

조류란 액자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이들은 창조의 길에 섰는가 아니면 파멸의 길에 섰는가.

1910년 10월 19일 오후 10시 26분 15초,

방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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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1970생 작가같에요.

좀 이상한 말이긴 한데 님이 알아서 걸러들으셈

1930년대에 어디 신문에서 단편소설 쓰던 작가 같아요ㄹㅇ 왠지 이상이나 윤동주 좋아했을 것 같음

현직작가

혹시 현직 작가신가요?

걍 멋있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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