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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 : 상반의 고귀함 [9장. 꿈 같은]

김하윤 레벨 8
2023.10.15 19:08

WARNING

-이 이야기는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썼으며, 실제 역사와는 무관합니다.

-유혈, 비속어 등이 종종 튀어나옵니다. 불편하신 분들은 뒤로 가주시면 되겠습니다.

 

8장 보러가기: https://play.popcornplanet.co.kr/freeboard/postview/423626?list_page=4

부록 보러가기: https://play.popcornplanet.co.kr/freeboard/postview/423689?list_page=3

 

 툭. 투툭.

 '비다.'

 감옥에 가만히 앉아있어도 비 내리는 소리는 들려온다. 처음에는 잔잔히 내리어오던 비가 점점 거세진다. 우수수-하며 비가 쏟아진다.

 

  "채성 형. 있어요?"

 나는 감옥의 벽을 똑똑 두드려보았다.

 

 "어어. 괜찮은 것 같아, 아마... 등허리가 좀 아프긴 한데. 카퓨신은 저어쪽 건너편 방에 있고. 밖에 비 오지?"

 "예에."

 빗소리 탓인지 채성의 목소리가 유독 흐렸다.

 "...뭣 때문에 실패했으려나, 의거가..."

 

 "..."

 나는 아무말도 않는다. 내가 무어라 하기엔 미안하니까.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첩자로 의심하고 있었는데 어찌 그럴까.

 

 "유이토 맞지, 공식적인 일어 이름이."

 "네."

 "나중 되면 바빠서 못 알려줄 것 같네. 카이 운, 내 다른 이름이야. 이름이 카이, 성이 운."

 말을 끝내는 그는 말끝에 기침을 내었다.

 

 "형. 괜찮아요?"

 "어어. 괜찮아."

 채성은 뜸을 들이나, 빠르게 물었다.

 

 "...넌 일본 왜 왔냐."

 "왜긴 왜겠어요. 나라 찾으러 왔지."

 나는 그렇게 대답을 끝내려다 문득 알게 되었다. 채성은 그게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다. 아득해져가는 정신을 차리기위해 계속해서 입을 움직이는 것이다.

 

 "원래 러시아에서 살다가, '그' 모임 관련된 소식 듣고 흥미가 생겨서요. 그래서 일본 왔어요. 형은요?"

 "나? 나도 뭐... 미국 쪽에서 가라니까 왔지. 나도 내가 왜 왔는지 알 것 같다, 야. 너도 네가 왜 그를 쏘게 됐는지는 대충 눈치나 챘지?"

 

 "그럼 형은 왜 이런 일 하기로 했어요. 형은 뭐, 외양이 조선인이라지만 공식적으로는 프랑스인이라 그냥 살아도 될 뻔했던 것을."

 딱히 할 만한 질문이 없어 뱉은 질문이었다. 이게 실례였다면 채성에게 유감이지만, 실례고 아니고를 따질 틈이 없었다.

 "허, 미친... 이걸 대뜸 물어보네."

 "나도 알려줄게요. 우리 둘 다 계속 입은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

 

 "그건 그렇지... 근데, 난 뭐 거창하지가 않아서 말이야. 5년 전이었나, 우연히 조선인 대학 동기를 만났어. 걔가 만세운동에 참여해서 꽤 고생했다지, 아마. 그냥 그게 다야. 그것 뿐이야. 넌 어떤데?"

 "저는-"

 

 잘그락. 달캉달캉. 끼익.

 열쇠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만 내가 수감되어 있는 감옥의 문이 열렸다.

 "살아계십니까?"

 "네? 아, 예. 보시다시피."

 주아였다.

 

 "괜찮으십니까, 그럼?"

 "괜찮을 리가."

 "이것 좀 드십시오. 아편(*양귀비의 덜 익은 열매를 에어서 분비되는 젖 모양의 진을 건조시켜 얻는 고무 모양의 물질. 한 마디로 옛날 마약.)이 조금 들어간 약입니다. 아주 소량이니 먹어도 고통만 잊지 큰 영향은 없을 거고. 그냥 삼키는 겁니다."

 주아는 내게 작은 약을 내밀었다. 길이는 소지 한 마디 길이요 두께는 탄환 정도 되었다. 그것을 받아 삼키자 미치도록 고통스럽던 몸이 조금은 완화 되었다.

 

 주아는 옆에 있던 옥으로 가더니 같은 약을 내미는 듯 보였다. 채성의 신음이 꽤 아파 보였다.

 "...으..."

 "아프셔도 좀 참으십시오. 붕대 바로 감겠습니다."

 

 나는 어지로운 몸을 일으켜 주아와 채성이 있는 쪽으로 갔다. 주아는 채성의 머리에 붕대를 감아주고 있었다. 새하-얀 붕대는 금방 붉게 물들었다.

 "형...!"

 "괜찮아. 아까도 잘 얘기하고 있었는데 왜 그래."

 채성의 쌔액, 쌔액 거리는 호흡이 불규칙적인 감이 있었다.

 

 "저는 카퓨신도 챙겨야 하니, 두 분은 먼저 양복점으로 가세요. 동선은 여기 써뒀습니다. 들키지 않게 조심하세요."

 나는 주아가 준 종잇조각을 받아들어 주머니 속에 대충 넣고, 채성을 일으켜 부축했다.

 

 "얼마나 맞은 겁니까... 사람을 걷지도 못하게 만들어둘 정도로."

 "프랑스 사람이래도 이리 조선인 같이 생기고 말하고 행동하니까 눈깔이 돌아가나보다... 하하."

 "웃을 일 아닌데."

 채성은 최대한 자신의 의지로 걷고 있었지만 결국에는 나에게 기대었다.

-

 조용히 감옥을 빠져나왔다.

 비가 쏟아진다. 그 비를 맞는다. 빗방울이 아픈 상처를 때린다.

 "진짜 울고 싶은데 웃음밖에 안 나오네."

 "웃읍시다, 그냥. 울 힘이나 있으면 웃는 데에 쓰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뛸래?"

 "예?"

 "야, 뛰자. 나 몸 좀 괜찮아진 것 같아."

 내가 당황해서 뭐라 하지도 못하는 사이, 채성은 비를 맞으며 뛰었다. 삐그덕 삐그덕 달리는 채성의 뒷모습은 참으로 묘했다. 빠르지는 않지만 느리지도 않고, 온 힘을 다해 뛰는 모양새가 꼭 살기위해 죽을 수도 있다고 하는 듯했다.

 

 나도 뛰니까 알 듯했다. 그럼에도 뛸 만하다. 몸 상태든 인생이든 이런 삶이든. 평범하게 살 수있던 욕망도 견딜 만하다.

 비로 목욕을 하며 뛰었다. 땀에 눈물에 빗물에, 우리 둘 다 흠뻑 젖었다.

 

-

 

 "하야카게-"

 일군 하나가 내 등을 툭, 치며 나를 불렀다.

 

 내가 지금 내가 죽인 사람의 군복과 군모를 입고, 그의 행세를 하고 있는 탓은 우리의 염원이요 소원이다. 굳이 많은 군인들 중 하야카게를 죽인 이유는 그는 조선인이다. 즉 목소리만 잘 흉내낸다면 아무도 내가 여휘오라는 것을 모른다. 그런 사실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쓰게 다가온다.

 

 "밥은, 먹었나?"

 "예. 먹었습니다."

 "어디 가?"

 "저, 그 옥에... 순찰하러 갑니다."

 "전에는 같은 조선인이라 그런가, 거기 가는 걸 그리도 꺼려하다니, 너도 결국 가긴 가구나?"

 "네에, 뭐..."

 

 나는 천천히 감옥 쪽으로 갔다.

 수많은 조선인이 갇혀있었고 중에는 아는 얼굴도 있었다. 다들 상태가 낡고 너덜너덜한 종이 같았다. 나는 곧장 보이는 홍청의 일원에게 갔다.

 

 "?"

 그는 처음에는 날 못 알아보는 것 같았다. 별 볼 일도 없는 내게 뭣하러 왔냐며 욕을 하는 그런 눈빛이었다. 나는 눌러쓴 군모를 벗었다.

 

 "오랜만입니다."

 "자네...!"

 그는 다짜고짜 내 멱살을 잡아들 것처럼 말했다.

 

 "기어코 변절을...!"

 "아, 아닙니다. 변절이라뇨. 무슨 그런 소릴... 이건 변장한 것밖에 더 안됩니다. 군복은 실제 일군을 죽여서 구했고, 사건의 입막음은 어떤 후원자를 통해 해결했고, 전체적인 관리는 류 부대장님께서 맡고 계십니다. 현재로썬 류 부대장님이랑, 서유랑 같이 있습니다."

 "김 대장님은? 대장님은 살아계시나?"

 "예. 지금은 경성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동지들 모으러."

 

 나는 열쇠로 그가 갇혀있는 문을 덜컥 열었다. 그와 같은 방을 쓰던 다른 자들도,

 "뭐여?"

 "무신 일이길래..."

하며 의아해하다가, 그가 먼저 나가자 낮게 웅성이며 옥을 나왔다.

 

 "잠시만... 너무 우르르 나가면 분명 걸릴 것입니다. 선생님, 나가서 도포 하나만 걸치시고 다른 분들 다섯 분은 이 옷 좀 위에 입으시고 갑시다. 그렇게 하루하루 조금씩 탈출하는 겁니다."

 나는 그에게 도포를 건네었고, 잠시 기다리게 한 뒤 소작의 옷을 가져왔다. 그가 양반 행세를 하고 나머지가 소작 행세를 하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가 이끌 수 있도록 길을 가르쳐준 뒤 물었다.

 

 "저, 선생님. 여쭤볼 게 있습니다. 합류하실 겁니까?"

 "...해야지. 한 번 들어왔는데 어떻게 나가냐?"

 그는 내 어깨를 가볍게 툭툭 치고는 밝은 세상으로 향해갔다.

-

 퇴근을 하고 돌아가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저..."

 20대 초반이나 서유보다 나이가 살짝 더 많아보이는 이 사람은 양장으로 제 몸을 가린 여성이었다. 일어로 말을 걸길래 나도 일어로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도와드릴 것이라도."

 "..."

 여성은 가만히 있더니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조선어로 말했다.

 

 "혹시... 류남자, 진자 되시는 분을 찾고 있는데요."

 "!"

 나는 놀라 흠칫 몸을 떨었다. 류 부대장님께선 지금 류후청이란 가명을 쓰고 계시니 놀라는 것도 유난은 아니리라. 나는 품속에 있는 총을 만졌다. 차가운 쇳덩이를 꺼낼까 말까 고민하는데 그녀가 말했다.

 

 "다른 악의는 아닙니다. 그저, 보고 싶어서..."

 "보고 싶어서?"

 무슨 뜻인질 몰라 되물었다. 여인이 천천히 모자를 벗었다.

 모자를 벗자, 하아얀 피부에 달빛 탓인진 몰라도 오묘한 남색 빛깔이 있는 머리칼, 일자(一)에 가까운 눈꼬리와 좀 짧은 속눈썹, 무덤덤한 입꼬리가 꼭 류 부대장님 같았다.

 

 "먼 길 찾아온 겁니다..."

 눈물이 그렁그렁 찬 눈망울에서 볼 수있는 눈빛과 은은하게 중저음을 내는 목소리가 류 부대장님을 꼭 닮아, 만약 그가 여인으로 태어났다면 내 앞의 이 여자와 같이 생겼으려니 싶게 했다.

 "러시아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본의 동경에서, 조선의 경성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버님이 혹시..."

 "네."

 거짓말 같진 않았다. 부대장님을 닮은 얼굴에 그려진 표정이 너무나도 슬펐고, 그를 닮은 목소리에는 그리움이 묻어났기 때문에 내가 감히 의심할 순 없었다.

 

 "혹시 이름이."

 "소, 솔화입니다. 류솔화."

 "따라오세요. 부대장님 만나게 해드리겠습니다."

 나는 솔화를 호텔로 데려가 부대장님이 지내시는 방 앞으로 데려다 놨다. 나는 조심스레 문에 노크를 했다.

 

 "부대장님. 계십니까?"

 "어어. 무슨 일인가. 일단 들어오게."

 부대장님께선 곧바로 문을 열어주셨다.

 

 "뒤에는-"

 부대장님께선 말을 끊으셨다. 아니 잇지 못하셨다는 표현이 맞겠다. 눈동자가 떨리신다.

 

 솔화가 부대장님에게 다가갔다. 눈에 눈물이 가득차 한 번 툭 건드리면 터질 것만 같다.

 "...솔화..."

 부대장님은 덥석 솔화를 안는다. 실감이 안 나시는 것인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것인지 방금 솔화를 처음 본 표정으로 솔화의 등을 쓸어주신다.

 

 "아빠... 나 기억 안 나요? 아빠 딸, 5살짜리 딸, 류솔화, 이렇게 컸어요... 용케도 살아서, 살아서 있어요."

 "..."

 "악착같이 살아서, 진짜, 살아서 아버지라도 본다는 신념 그것 하나로... 살았어요. 죽어도 살았어요. 러시아에서는 너무 추웠고 일본에서는 너무 아팠고 여기서는 너무 그리웠어."

 "...잘 왔다, 우리 딸."

 

 결국 부대장님도 눈물을 터뜨리셨다. 나도 조금 놀랐다. 부대장님이기 이전에 류남진이라는 사람을 알게 된 후로, 그가 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처음 만났을 땐 정말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였으니까.

 늘 그리웠던 사람 앞에서 무너져내린 부대장님도 결국 어쩔 수 없는 아버지였고, 사람이다. 새삼스럽게 깨닫나 싶지만 또 막 새삼스러운 것이 아닐지도 몰라.

 

 나는 두 부녀끼리 이야기를 하고 자세한 건 내일 들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나도 괜히 두 부녀를 보고 울컥해서인지 서유의 방으로 들어갔다.

 "어, 아빠."

 "..."

 나는 서유를 꼭 안았다.

 

 "딸아, 사랑한다."

 "어? 어, 응... 나도 사랑하지, 우리 아빠. 근데 그건 갑자기 왜...?"

 나는 서유에게 모든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그래서 아마 지금이면 부대장님이랑 솔화 씨랑 얘기라도 하고 계시겠지 싶은데."

 

-

 

 하숙집은 너무 위험하고, 그렇다고 갈 곳은 없어 염치 불구하고 한동안 아사라 쿠토하의 양복점에서 간단한 일을 하며 양복점에서 지냈다.

 "어."

 "무슨 일이십니까, 유이토?"

 

 "아... 아닙니다. 그냥 새가 앉아있길래."

 나는 창틀을 닦으며 금방 새를 돌려보냈다. 쪽지는 금방 주머니 속에 넣었다.

 

 일을 마치고 양복점 위의 다락방으로 올라왔다. 예전에 지내던 하숙집보다도 작은 방에 먼지가 조금 쌓인 방이었으나 상관 없었다. 길거리에서 아무것도 못 먹고 쪽잠만 잔 세월이 얼마나 긴데.

 한동안 바빴는지 쪽지가 통 없었는데 그래도 다행이었다.

 

 일본에 계실 부대장님께.

 오랜만에 인사 드립니다. 1주일 좀 넘었나요? 죄송합니다. 한동안 바빴습니다.

 요즈음은 여 선생님께서 변장을 하시고 경무소에 잠입하셔서 동지들을 구출해내려고 하십니다. 아마 구출을 마치면 경성에 계신 김 대장님을 뵈러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부대장님께 기쁜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선생님, 조선에는 언제 오십니까? 조선에 선생님 따님인 류솔화 씨가 있습니다.

 얼마전에 솔화 씨가 우릴 찾아왔는데, 러시아에서 일본을 거쳐 조선으로 왔다네요. 그날 종일 솔화 씨와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부대장님 기억도 아주 조금 보게 되었습니다. 이건 제가 죄송합니다. 그래도 저도 없던 부성애가 나오더라고요 솔화 씨 보니까. 따님을 아주 많이 사랑하셨나 봅니다.

 10년하고도 더 오래전에 헤어졌던 따님은 이제 곱게 자라 아가씨가 다 되셨습니다. 그 아가씨는 의병에 합류하고 싶으시다고 하네요. 우선 받아주긴 했다만, 혹여 따님이 걱정될까 말씀드립니다. 따님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선생님과 제가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는 그날 따님과 오래도록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 소식을 전하는 지금, 조선에는 비가 옵니다. 일본에도 비가 오고 있습니까? 그럼, 좋은 하루 되십시오.

 

 "...하."

 나는 쪽지를 내려두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계속해서 눈물이 났다. 주체할 수도 없고, 그럴 마음도 전혀 없다. 하염없이 울고 싶다. 소리 내어 울고 싶지만, 차마 소리까지는 못 내었고 소리를 꾹꾹 눌러가며 울었다.

 

 기쁘고 슬프고 미안하고 괴롭고 안도하는 미묘한 감정들이 복잡하게 섞여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너무나 고마운 감정이 있다. 나는 나 자신조차까지 버렸으나 솔화는 아니었다. 그 먼 길을 어떻게 그렇게 건너 와주었을까.

 모를 수 없으니까, 내가 너무 잘 아니까, 그래서 더 눈물이 나는 것 같다. 그 길을 용케도 살아서 포기는 더도 말고 나에게 와주었다.

 

 스물넷에 모든 것을 잃었었다. 아니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라고 하자.

 집. 재산. 부모님. 아내. 자식들. 그런 것들을 모두 잃었다. 물질적인 것부터 비물질적인 것까지 모두 다 잃었다. 젊고 어렸던 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 아니 사실상 정말로 미치긴 했다. 1년을 그렇게 소위 말하는 '광인(狂人; 정신에 이상이 생겨 말과 행동이 보통 사람과 다른 사람.);, '폐인(廢人; 병으로 몸을 망친 사람. 혹은 남에게 버림을 받아 쓸모 없이 된 사람.)'의 꼴로 지냈다.

 좌절했었다.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를 넘어, 죽으면 오히려 기쁘겠다 싶을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었다. 그럼에도 죽지 않은 이유는 웃기게도 그렇게 죽어도 상관은 없지만, 죽는 것을 시도를 한다는 것이 귀찮았기 때문이다.

 

 그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 아내와 아들들은 죽고 딸이 도망쳤단 정도로만 들었으나 나는 솔화마저도 도망치다가 죽었으리라 생각하고 살았다. 이유는 첫째 군인에 대하여 다섯살이 생존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기 때문이요 둘째 일말의 기대라도 품다가 먼 훗날 유해라도 받으면 그땐 내가 어떻게 할지 나도 모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눈물이 나는 것은, 나는 가끔 나도 모르게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솔화는 책을 좋아했으니 지금쯤이면 영어를 배워 미국 어느 시골에서 도서관에 앉아있으려나.

 신문물에 관심이 있었으니 독일 같은 나라에서 한손에는 신문을 들고, 한손에는 돈을 쥔 채 작은 물건들을 파는 가게에서 무얼 살까 고민하고 있으려나.

 아, 아니면 서양인들이 키도 크고 훤칠하게 생겼다고들 하니 재력 있고 잘생긴 서양 남자를 만나 예쁜 연애를, 말이 많던 그 '자유연애(自由戀愛; 사회적 전통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유로이 하는 연애.)'를 하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어떤 상상을 하던, 솔화는 조선에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있는 곳에는 없었을 것이다. 저 멀리 나조차 알지 못하는 곳까지 갔으나 정작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는 없다. 없어야 한다고, 늘 생각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약간의 욕심은 있어서 그런지 솔화가 조선에 있고, 나와 있다는 소식에 눈물이 났다.

 

 홀린듯 조이원에게 편지를 썼다. 무슨 이야기를 써 보냈는지는 기억이 흐리나 솔화에게 고맙다는 말을 대신 좀 해주었으면 한다고 보냈다.

 잊어도 되는데. 잊어도 상관 없는데. 나만이 기억해도 되는데. 죽어서도 나를 모른 척한다면, 나 또한 모른 척할 자신 있는데.

 

 "..."

 눈물이 말라 더 쏟을 눈물이 없는 것인지, 요동치던 감정이 진정된 것인지 눈물은 더 나지 않았다. 눈물 범벅이 된 손을 옷에 대충 닦았다. 손등으로 얼굴에 번진 눈물자국도 쓸어준 뒤 손을 털었다.

 

 당장 솔화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지금 당장은 솔화가 내가 아닌 타인을 만나서 다행인 것 같았다. 내가 솔화를 만난 것이라면 아마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를 몰라 오히려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이렇게나마 감정을 조금이라도 추스려야 솔화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조금... 쓰네."

 아마 의병에 합류하겠다는 것은 이미 총을 들어보았다는 것일 테다. 결국 나와 같은 길을 선택하는 딸이 대견하다가도 걱정스러웠다. 만류하고 말리고 거절하고 싶었으나 제 길이 그렇다던데, 어쩌겠나. 조이원을 믿는 수밖에 없겠지.

 

 처음으로 솔화가 와 주었을 때 생각했다. 아, 이 아이가 무엇이 되려 하거든 부모된 도리로써, 아비된 도리로써 응원해주어야지. 지지해주어야지. 하지만 차마 의병이 되려고 나를 붙잡는다면 그것은 잘 달래주어야지.

 지금은, 글쎄. 모르겠다. 솔화가 제 목숨 건사라도 잘한다면 나는 솔화를 응원해줄 수밖에 없다. 그저 그 아이를 그대로 봐주고 그럴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몰려오는 불안함과 무언지 모를 기신감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하고 잠을 청했다.

 

 꿈에 어떤 처녀가 나왔다. 처녀는 20대 초반이나 10대 후반 정도로 보였는데, 검은 생머리가 길고 흰 셔츠와 갈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얼굴을 검은색 종잇장 같은 것으로 가리고 있어 볼 수 없었다. 나와 처녀가 있던 곳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아래를 보든 앞을 보든 위를 보든 깨끗한 하얀색만이 존재했다.

 나는 처녀에게 물었다. 누구냐고.

 처녀는 나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울면서 말했다. 미래에 저를 낳아주지 말라고. 머나먼 훗날 자신을 낳아주지 말라고. 우리 연은 이번 한 번으로 정리하자고. 울음이 반 정도 섞인 목소리였으나 난 그것이 가장 그리웠던 목소리라 확신한 채 말했다.

 솔화니?

 그러니, 그 하얀 공간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다급하게 솔화를 붙잡았다. 차디찬 손목은 자잘한 붉은 상처자국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 손목을 잡자마자 솔화는 사라졌고, 그 하얀 배경도 모두 무너진 채였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 누군가 내 뒤에서 팔을 걸었다. 얼굴은 배경이 너무 어두워 보이지 않는 인물이었으나 어딘가 많이 본 듯한 느낌의 남자였다.

 누군가 나에게 다가왔다.

 쿠토하 대장님.

 내가 그를 불렀다. 그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으나 몸짓과 분위기가 미묘하고 복잡했다. 괴로워 보였다. 내가 무슨 일 있냐고 묻자 그는 답을 하지 않고 품에서 총을 꺼내 나를 향해, 아니 정확히는 내 옆의 남자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탕. 탕. 그는 두 발을 쏘았다. 한 발은 그 남자에게로, 한 발은 자신의 머리로. 내가 소스라치게 놀라 낮게 비명을 질렀다. 두 사람은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죽은 두 시신은 흑백으로 변했다. 유일하게 색을 가진 것은 붉은 피였다.

 

 "!"

 고개를 들자 다시 내가 잠든 그 방이었다. 아침이었다.

 "...?"

 그저 개꿈으로 넘기기에는 너무 기이한 꿈이었기에, 조이원에게 이 얘길 할까 잠깐 고민하다가 관두었다. 최근 생각이 복잡해져서 꾼 꿈일 수도 있으니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로 했다.

 

 "...그래도 낳아주지 말아달라는 건 좀 슬프네."

 

---

 

작가의 말: 네 뭐.. 오늘은 생각보다 짧아서 시즌2 떡밥 좀 넣어봤습니다 좀 끼어넣은 거 같다고요? 끼어넣었으니까요ㅇㅇ.

참고로 일러레 팀 현상황을 말씀드리자면

 

생각보다 적게 신청을 해주셔서 살짝 당황했지만?

뭐 딱 알맞게 3분이 신청해주셔서 오케이 했는디 두 분께서 사정이 있으셔서 취소를 하셨고요

지금 염유리아님만 남으신 상태

 

아 염유리아님께서 메인 해주시고 제가 팀장이랑 서브 같이 하면 되니까 죄책감 갖지들 마시고

혹시 신청할 의향 있으시다! 하시는 분들 아래 링크 확인해주세요~~ 일단 받는대로 받으렵니다

https://play.popcornplanet.co.kr/freeboard/postview/424863

 

알림신청 분

_이지민님

_김민진님

_안은별님

_정다연님

_임소윤님

_강윤님

_박태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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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2

이걸 니제 봤네요... ㅇㅅㅇ

메알로 도착 상반의 고귀함 1호ㅓ부터 링크 보나주시면 재밋게 보겟습니다....!!,

쌤~ 이제 봤지만 정말 쩔어요!

이제 책으로 낼 때가 온 것 같아여~

소설 작가 드갑시다ㅏ

쩔어요 샘. 


왠만한 책들보다 쩔어요

네?

님 진짜 종이책 주문제작해서 팔면 제가 사갈겁니다.

저도 살래여ㅕ
ㅋㅋ 저희 아버지 출판사에 내주시죠

서점문 열기 전부터 기다립니다. 그래서 어디에서 출판된다고요?

앜 저도 살겁미다 히히

한 권만 제작하면 되겠네요!

미안해요ㅠ 

근데 이거 드라마화 시켜도 떡상할 듯요,..


오우 노노 미안해하실 필요 없어요 ㅇㅁㅇ..

이거 드라마화 시키면 한번 반짝하고 중도하차 먹을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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