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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 : 상반의 고귀함 [8장. 어디서부터,]
WARNING
-이 이야기는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썼으며, 실제 역사와는 무관합니다.
-유혈, 비속어 등이 종종 튀어나옵니다. 불편하신 분들은 뒤로 가주시면 되겠습니다.
7장 보러가기: https://play.popcornplanet.co.kr/freeboard/postview/422513?list_page=3
나의 의형제에게.
남진, 잘 지내고 있나? 내가 찾아가러던 그이는 잘 만났겠지? 그애가 좀 싹바가지 없어도 이해해주게. 타고난 성격이 솔직하질 못한 녀석이야.
나는 지금 경성에서 머무르고 있다네. 운이 좋게도 경성에 도착하자마자 우연히 최헌 선생님을 마주쳐 그 분 댁에서 지내고 있지. 휘오 동지에게도 전해줘, 선생님 잘 지내신다고.
나는 다시 동지들을 모으는 중이네. 다행히도 살아있는 이들이 많더라고. 그들을 설득시키며 다시 시작해보세.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김수완.
추신. 너한테 편지 쓰니까 정말 오글거린다.
나는 붓을 내려놓았다.
여긴 경성이다. 밖을 나오면 번화한 거리, 번화한 건물들, 번화한 사람들 같이 번화한 것들이 넘쳐난다. 이놈의 나라꼴이니, 의병활동이니, 그런 것만 아니었다면 밭이나 일구고 있었을 나로써는, 그래, 참 신기하지 않을 수도 없다.
경성에 처음 도착한 일을 떠올렸다.
일부러 소작들이 입는 옷을 하니 사람들은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물론 나를 보며 쿰칫 웃거나, 어쩌다 옷깃 한 번 스치면 똥을 씹는 얼굴을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도 내가 그 때 어떻게 그런 사람들을 보고도 가만히 있었는지 모르겠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물은 겨우 몇 모금 마신 상태였고, 음식은 계속 못 먹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나도 김태온 대장의 피를 가진 것은 맞는지 목숨줄 하나는 참 끈질기다. 뭐, 적어도 스스로 죽을 일은 없으니 다행이겠다.
그렇게 머무를 곳을(아니, 거의 노숙할 곳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과 부딪혀버렸다. 머릿속으로는, 죄송합니다 나리, 하려고 했다. 그런데 순간 말이 안 나오는 것이다. 머리가 띵하고 세상이 핑 돌면서 앞이 캄캄해지는 것이 아닌가.
겨우 중심을 잡고 죄송하다 말했다.
"...어? 수완!"
"예? 저?"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헌? 최헌 선생님?"
"그렇네. 이야, 얼마만인가. 여긴 웬일인가? 아니, 그 전에, 일단 어서 들어오시게."
그렇게 나는 헌 성생님을 뵈어 여태까지 있었던 모든 일을 말씀드렸다. 내가 뭣도 모르고 스스로 첩자를 들인 일부터 도망치다 보니 결국 홍청이 잠시 해체 되었다가 우연히 남진과 연락이 닿아 휘오를 찾아간 일까지.
모든 일을 털어놓고 나니 부끄러움이 화악 들었다. 대장으로써 자질이 너무 없는 것 같다. 적어도 김태온이란 그는 대장의 자질은 있었지, 나는 아들로써도 대장으로써도 자질이 전혀 없는데.
"단원들을 모으려고 올라왔습니다."
"..."
우연히 올려다본 선생님의 얼굴은 인자했다. 무엇인지 모를 감정이 마음의 진흙 위로 올라오며 속마음을 털었다.
"올라왔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질 모르겠습니다. 사실, 오는 길에 계속 생각했습니다. 내가 단원들을 져버린 채 도망쳐 온 비굴하고 비겁한 짐승만도 못한 놈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왔습니다."
"...대장님께서 수고가 많으십니다. 아니, 수완아. 네 수고가 많다."
수완아, 한 마디에 그 마음이 진흙 위로 싹을 틔웠다. 손으로 부채를 만들어 눈가에 부쳤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울 것 같았다.
"네 인생의 반 이상을 본 나야. 숨기느라 얼마나 애썼겠니. 괜찮다. 괜찮아. 그리고 고맙다."
"뭐가 그리 고마우시다고..."
"1기 대장과는 다른 선택을 해줘서. 그게 정말 고맙다. 계속 악착같이 살아, 발을 겨눈 끝에 결국 살기로 택해줘서. 죽고 싶도록 미칠 것 같은 그 상황에서, 끝끝내 살기를 택해줘서. 그리하여 지금 이렇게 내 눈 앞에 서 있어줘서."
나는 가만히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죄송하다. 감사하다.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무척이나 감사합니다."
"...이렇게 털어놓는 거, 내게 그러는 것이 처음이구나. 그렇지?"
"예..."
곰곰히 생각하면, 내가 어릴 적부터 착하다는 얘기를 들은 이유는 내 고민은 속으로만 삼키고, 대신 그 속을 남의 고민으로 채워서가 아닐까. 나와 얘기를 하는 사람은 굳이 자기 고민만으로도 힘든데, 내 고민에 꾸역꾸역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내 삶이 아예 부질없게 느껴진다. 나는 홍청을 이끌면서도, 결국 겁이 너무도 많아서 내 고민 하나 털어놓지 못하는 인간관계를 생성하는데에 아예 병이 났다. 남진조차도 내 진짜 속맘을 들어본 적은 손에 꼽지 않을까.
한동안, 그러니까 남진을 만나 친해지기 전에, 인간관계 때문에 너무 힘들었던 적이 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남동생과, 그렇게 해맑고 어리나 생사 앞에서는 앞뒤 없을 사촌 여동생과, 그 냉정한 아버지를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했던 어머니와, 그 옆에서 같이 울던 할머니와, 내가 편히 숨을 쉴 수 있었던 그 애와...
모두가 죽었는데 감정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를 아버지는 반응이 없으셨고, 그렇다고 다른 이에게 말하자니 내 슬픔은 그들의 것에 비해 한없이 하찮은 슬픔일까 걱정되었고, 유일하게 얘기할 수 있던 그 애는 이미 죽었고.
그래서 정말 죽을까 하고 혼자 권총을 이리저리 내 몸에 가져다 댄 밤이 꽤 많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어쩌다 그런 날 발견하고 바로잡아주신 게 헌 선생님이셨다.
어렸던 나는 나라가 구해질 기미도 안 보이는데 내 사람들 싹 다 잃었다, 하물며 내게 아버지는 애초에 없었고 홍청의 1기 대장 뿐이었다, 나는 그냥 의병 인력을 하나라도 더 늘리기위해 태어난 것 아니냐, 같은 망언을 내뱉으며 반항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나를 진즉 포기했겠지만 선생님은 달랐다.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 붙잡아주셨다. 내게 살아갈 이유를 알려주셨다.
불손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당시에도 지금도 김태온 대장보단, 최헌 선생님께 더욱 강한 부성애를 느꼈을 것이라 장담한다.
"그래, 동지들을 모으러 왔다고?"
"네."
"음... 그럼 당장은 머물 곳이 없으려나. 없으면 내 집에서 묵거라."
"네? 아닙, 아닙니다. 넋두리 들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제가 무슨 염치로..."
내가 손사례 쳤지만, 선생님께선 얼마없는 내 짐을 가지고 방을 나가셨다.
내 짐이, 툭, 내려두어진 곳은 깔끔한 방이었다.
"아들이 쓰던 방이야. 죽은 놈이 쓰던 방이긴 하지만, 청소는 달에 두어 번씩도 하니까 너무 꺼림칙하게 여기지 말고. 그리고 좀 꺼려져도 아들 놈 양장 좀 입고 다녀. 어쩔 수 없어, 여기선 그런 옷 입고 다니면 맞는 곳이야."
"아니예요, 선생님. 제가 뭐라고 선생님 아드님 방이랑 옷을...!"
선생님께서는 내 어깨에 손을 툭 올리시며 말씀하셨다.
"늙은 이가 주정이라도 부리는 것이겠거니 생각해. 어서 짐 풀어."
선생님은 그대로 방을 나가시다가 참, 하셨다.
"그럼 남진에게는? 그애한테도 네 마음 안 털어놨느냐?"
"그 친구는... 뭐, 저보다도 많이 잃었는데 어떻게 말합니까."
"그래?"
선생님께선 방을 마저 나가시며 말씀하셨다.
"수완아, 너는 네 주변인 좀 믿어야겠다. 너도 알겠지마는, 류남진 걔도 심성은 착해. 백날 천날 들어주기만 하지 말고, 적어도 그 친구한테 한 번 말해봐. 내가 언제까지 살아있을 줄 알고."
시점을 현재로 돌리자.
나는 죄송스럽게도 선생님의 아드님 옷을 입고 편지를 부치러 거리를 나왔다. 왁자한 거리에는 아직 어린 학생들부터 모던보이나 모던걸, 깔끔한 노인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길을 지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나... 바로 얼마전에 왔구나, 여기.'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나왔단 것을 이제서야 알았다.
지나가던 남자에게 물었다.
"실례합니다... 편지 좀 부쳐야 하는데 혹여 어디로 가야 하나요?"
"아, 저-기 한 오십보 쯤 가면 경무소 있는데, 거기 바로 왼편 입니다."
윽. 경무소. 경무원들이 알아보진 않으려나.
"...예에, 감, 감사합니다."
잔뜩 긴장한 채 경무소 앞을 지났다. 경무소 앞에는 젊은 경무원 둘이 무어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언어를 보니 일본인 같진 않고, 조선인 깉았다. 쓴 눈빛으로 그들의 깨끗한 구둣발을 슥 훑어보며 지나갔다.
"어? 거기, 당신."
경무원 하나가 나를 가리켰다. 나는 멈춰섰다.
"익숙한 얼굴인데? 예를 들면- 여기서 못할 짓이라도 하는 사람."
"사, 사람 잘못 보셨소."
나는 모자를 더 푹 눌러쓰며 말했지만, 다른 경무원도 나를 믿지 않았다. 그는 내게 다가와 내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잘못 보기는."
처음 내게 말을 걸었던 경무원이 고개를 숙인 내게 얼굴을 들이대며 말했다.
홍청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는, 세상 이야기와 연 끊은지 꽤 됐으니 잘 모르겠다. 하지만 혹여라도 홍청의 영향력이 이쪽까지 퍼지고, 지역별 경무소에서도 이야기가 나왔다면...
내 얼굴을 알아볼 수도 있다.
"...바쁘게 갈 곳이 있어서 이만..."
최대한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경무원 둘이 낄낄대며 날 막아섰다.
"뭐, 물 좀 맞으면 털어놓으시려나? 손가락이라도 못 쓰게 해줘? 응?"
"..."
어쩔 수 없나, 백주대낮에 몸싸움이라도 해야하나, 갈등하고 있었다. 그때 서른여서일곱 쯤 되어보이는, 깔끔한 양장을 입은 사내가 나를 보며 공손히 말했다.
"선생님. '거기' 안 가십니까?"
'어.'
민제견이었다. 제견은 우리 조직 중에서도 꽤 어린 측에 속한, 혈기왕성하고 매사 열정적인 그런 이였다. 단점이야, 너무 열정적이라 그런지 가끔 불 같은 성격이 나오는 정도?
"나리들. 의국 가는 길인 사람을 왜 갑자기 잡으셨습니까요? 가뜩이나 부인 죽어서 정신 오락가락한 사람을..."
경무원들은 흠칫 하더니 나를 보내주었다. 아마 아예 미쳐버린 놈인데 독립운동이나 할 정신이 있겠거니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가시죠."
제견이 날 데려간 곳은 자신의 집이었다.
제견은 사랑방에 급한대로 자줏빛 방석 하나를 얹어 내게 앉으라고 한 뒤,
"오랜만...입니다. 대장님."
했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고?"
"예에... 이런저런 부상 말고는 뭐."
"많이 심해?"
진심으로 걱정되어 물었다. 나는 제견의 오른팔을 붙잡고 옷을 그의 어깨까지 걷어올렸다. 자잘한 상처에, 긁히고 베인 자국에 상처가 심했다.
"야, 야. 너, 너 이거 그냥 뒀어? 안 돼애. 이럼 나중에 흉져. 너 총도 못 쓰고... 피부라도 썩어문드러져서 팔 자체를 못 쓰면 어쩌려고 그래. 붕대 없어?"
"없어도 상관 없는데..."
"상관이 왜 없어. 안 입는 옷 중에 깨끗한 건, 있어?"
"괜찮습니다, 정말."
나는 제견의 오른 손목에 손을 슬쩍 올렸다. 제견이 아픈듯 움찔했다.
"봐. 아프지? 아까 만났을 때 손목을 못 움직이더라? 팔 상처 그냥 놔둘 거면, 적어도 손목은 고정시켜."
"..."
제견은 서랍에서 낡은 셔츠 한 벌을 꺼내왔다. 나는 조용히 제견의 셔츠로 손목과 목덜미를 이어 손목을 고정시켰다.
"...대장님은 왜 오셨습니까, 경성."
"왜 오긴... 너랑 다른 동지들 데리러 왔지. 대장인 나도, 부대장도 잘 살아있으니까 활동도 계속 해야지."
"우리 조직 안 망했어요?"
"왜 망해? 살아있는 이들 이렇게 멀쩡한데. 그리고 우리가 그날 전멸했다 쳐도, 우리는 망하지 않아. 패배는 그 한순간만의 흉년이야. 먼 미래에서 보면 그 흉년은, 다음해에 있을 풍년을 위한 거름이었을 거라고."
"...대장님은 어찌 그리... 긍정적이십니까?"
"응?"
"대장님도. 부대장님도. 나도. 다른 이들도. 그리 크게 다치고 심지어 몇은 죽었는데 어찌 그리 긍정적이시냐구요."
할 말을 잃었다.
"대장님이 데려온 첩자잖습니까... 당신이!"
"..."
"당신이, 인재라며 데려온 첩자 때문에 수십이 죽었어요...! 목숨이 우린 뭐, 의병으로써 나라 지킨다고 애쓴다면서 여러 개 주어집니까?"
"..."
"변명은, 준비 안 해왔어요? 준비된 변명 없어요?"
속이 울렁거렸지만 기어코 말했다.
"미안해."
"..."
"미안하다. 내가 너희 목숨 다 앗아갔어... 핑계 같긴 하더라도, 나도 그때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았어. 정확히는 죽으려고 했지. 근데, 안 되겠더라. 죽음으로 사죄를 하는 게 아니라 사죄를 하고 죽든 살든 해야겠더라."
제견은 입을 떨다가 겨우 떼었다.
"이렇게 사람 미안하게 하면 어쩌십니까... 대장님, 저... 이제 여기서 손 떼렵니다..."
"..."
"솔직히, 너무 무서웠어요, 그때. 눈앞이 탁 흐려지고 몸에 힘이 풀려서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가늠하지 못할 정도의 그런 공포 때문에, 숨을 못 쉬었어요 내가... 죄송합니다. 저, 이제 이런 거 한 번이라도 더 느끼면 진짜 제 스스로 죽을 것 같아요."
"이해해. 사과하지 마. 쉬고 싶을 때 쉬고,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둬야지. 좋은 때에 늦기 전에 그런 결정해야-"
위로를 해주는 건 나였는데 괜한 주책에 눈물이 났다. 눈물을 삼키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또 제견에게는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아서, 목에 무언가 걸려 넘기려는 것처럼 가슴을 두어번 쳤다.
"늦기 전에 그런 결정해야지, 응."
"대장님..."
"화내고 싶은 만큼 화내. 괜찮아, 내가 뭐 잘했다고. 대신 죽이지만 말아주면 좋겠는데."
제견의 입술이 조금씩 움직였다. 그러더니 말했다.
"대장님. 대장님도, 조금만... 조금만 이기적이세요... 네? 내가 너무 미안하잖아요... 대장님 그거 아세요? 저희 조직 내에서도 대장님 부담스러워하던 분들 좀 있어요. 대장님은 어떻게 그렇게 화를 한 번 안 내요? 어떻게 그렇게 짜증 한 번을."
그런 제견의 말에 순간 감정이 복받쳐 할 말이 무한히 쏟아졌지만 모두 나의 내면 얘기였다. 그런 고로, 나는 겨우 한 마디 말했다.
"...미안."
"대장님이야말로... 사과하지 마요. 저도 뭐 잘했다고."
제견은 아마 오늘 이 순간이 당신을 마지막으로 볼 날일 것 같으므로, 대장 대원 다 떠나서 충고 하나 하겠노라 하길래 들어봤다.
"선생님. 오래 살고 싶으시죠. 오래 살아서 풍년 온 거 보고 싶으시죠. 그럼 선생님부터 챙겨요. 제가 느끼는 것에 불구하다만... 선생님은 다른 이들한테는 잘해주면서도 본인에 있어선 비인간적으로 학대를 하더라고요."
"그래? 그렇게 보였나?"
"...선생님께서 스스로 가한 학대 탓에 선생님께서 돌아가시면 안 되는 겁니다. 풍년이고 흉년이고 못 봐요."
이렇게 남의 집에 계속 앉아있기에도 좀 그래서 나는 다시 편지를 부치러 돌아가기로 했다.
"대장님!"
"어?"
"...감사했습니다..."
"감사한 건 나지. 잘 지내. 사람도 여럿 만나보고. 경험 못한 것들도 다 해보고."
나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는 하고 싶은 거 모두 할 가치가 있잖아. 대신 하고 싶은 것들 다 하는데, 우린 잊지 마. 그때도 갖고 있고 지금도 조금은 가지고 있을, 그 마음 잊지 마. 하고 싶은 거 하고, 많이 웃어도 보고, 마음도 편하게 먹는데, 나중에 풍년이 오고 우리가 살아있으면 한 번 얼굴이라도 비추고. 그게 아니라면 잘 자란 쌀이라도 대신 수확해주고. 응?"
그 말은 곧, 내가, 우리가 죽으면 사람들이 이 마음 못 잊게 해달라는 말이다.
"그런 말씀 마세요, 선생님. 사셔야죠. 살아서 선생님께서 거둔 씨앗이 벼로 잘 익은 모습은 보셔야죠. 몸이 망가져서 수확은 못하더라도, 보시긴 하셔야죠."
"...그래, 그래야지. 잘 있어. 나중에 꼭 보자."
처음 제견이 의병을 그만두리라 했을 때, 붙잡겠다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제견이 내 사과를 받아주었다는 생각에 안도되지는 않았다. 감정이란 것 자체가 별로 들지 않았다. 뭐, 제견이 그렇다고 하니 존중해야지, 정도의 생각이 전부였다.
아마 나조차도 자각하지 못할 찰나의 순간에 '아, 제견 같은 애는 붙잡아야만 한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 대한 의구심이 계속해서 뇌리를 채우더니 이내 아무 감정이 들지 않게 된 것이다. 결국 나는 나를 믿지 못했다. 익숙하다. 언젠가부터 그저 나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작은 결정 하나를 하더라도 수백수천 반복해서 생각해보고 결국 최종적인 결정 전에는 진지하게 남진과 의논해본다.
"나한테 그만 좀 물어봐, 수완. 널 좀 믿어. 나도 너를 믿는데 넌 왜 널 못 믿고 그래."
언젠가 남진에게 들었던 잔소리 중 하나다. 짜증과 지겨움이 섞였다기보다는, 나에 대한 걱정과 연민, 사람으로썬 어쩔 수 없는 한편의 한심함이 섞인 목소리였다.
그 걱정마저도 내게는 과분하다고 생각한 나는 그저 웃으며,
"자네라도 믿어주는 게 어디야."
한다.
편지를 부치고 온 뒤 돌아가는 길이었다.
누군가를 연속해서 폭행하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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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오늘 작가 삐져서 분량 짧음.. 큐앤에이 질문 왜 안 해줘요
여기다가 도착 관련된 큐앤에이 질문 써주세요
그리고 다연님이랑 현주님 사랑함미다 쪽
다음화는 일단 부록 해갖고 초기설정+큐앤에이+이런저런 떡밥 뿌릴 계획
알림신청 분
_이지민님
_김민진님
_김지우님
_안은별님
_정다연님
_임소윤님
_강윤님
_박태연님
작가님/역사를 좋아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의병 조직인 홍청(紅靑)에 뜻이 있다면 무엇인가요?/도착 캐릭터 중 좋아하는 캐릭터가 있으신가요?/어떻게 하면 글을 이렇게 잘 쓰죠?/혹시 제목에 뜻이 있나요?
분량 어느정도 나올 것 같으신가요?/ 역사 인물 중 도착에 넣어 보고 싶은 인물 있으신가요?
쪽쪽쪽
작가님/ 이 소설을 쓰게된 계기가 있나요?
작가님 / 8화 마감하시면서 든 생각은 무엇이신가요 / 혹시 노래를 들으신다면 무슨 노래를 자주 들으시면서 마감하시나요 / 이 소설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작가님께서 추천하시는 노래가 있을까요
+이거 안 써드렸네 질문양식은
질문하고 싶은 인물(작가도 ㅇㅋ)/질문
이겁니다~ 복수질문 가능해요 개수제한ㄴㄴ